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거나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 때도 한 달 안에 입출금계좌를 만든 이력이 있으면 통장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이걸 통칭하는 용어는 '단기간다수계좌제한'이다. 너무나도 불편한 이 규정의 법적 근거를 알아보자.
단기간다수계좌제한이란
은행이나 증권회사가 20 영업일을 간격으로 신규 입출금계좌나 주식계좌 개설을 제한하는 규정이다. 한번 입출금 통장을 만들면 주말 공휴일을 제외하고 은행이 문을 여는 날 기준으로 20일 동안 다른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20일 안에 만들려면 증빙자료를 제출해야한다.
더 자세한 참조
통장개설 신규계좌 가능일 확인방법 - 20일 영업일 제한
근거법 조사
금융감독원 지침설
단기간다수계좌제한의 근거법은 명쾌하게 알 수 없었고 인터넷상에서는 금융감독원의 지침에 따라서 규정도 없이 제한되는 거라는 소문만 무성하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다. 법적 근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게 정부행정조직이고 근거없이 뭔가 하려고 시도하면 정말 큰일 나는 게 법치국가 아닌가.
단서가 되는 금융감독원에 전화를 했다.
"어떤 근거로 20 영업일로 계좌 개설을 제한하는가?"
그런 적이 없단다. 금융거래 목적확인서를 제출하라는 거지 20일 제한은 금융감독원에서 조치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럼 20 영업일 제한은 금융권에서 임의대로 정한 것인가?"
그건 은행연합회에 문의하란다.
은행연합회
2009년부터 단기간 다수계좌 제한이 있었다고 한다. 한 달(1개월) 안에 다수계좌 개설 제한을 권고하는 금감원의 공문이 있었다. 그에 따라서 영업일 20일이면 얼추 1개월의 간격을 둘 수 있어서 그렇게 정하게 된 것이다.
은행들은 금감원의 권유대로 기간을 정해 제한 조치를 했고 금감원은 20일 영업제한을 명시한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공문에 영업일 20일 제한을 보낸 적이 없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기간 제한이 20일 영업일이라는 더 분명한 규정으로 이행된 게 뻔한데 은행연합회로 괜스레 질문을 돌린 게 마뜩잖다.
상부의 권유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기가 힘들다. 나중에 욕먹지 않을 방향 쪽에 서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금감원은 권유한 게 맞고 은행권은 임의대로 영업일 제한을 만든 게 아닌 것도 맞다.
하나더 덧붙이자면 은행도 계좌개설 규정이 빡빡해지는 게 싫지 않을 거다. 보이스피싱이 벌어지면 어쨌거나 은행이 연류가 되고 많이 피곤해진다. 억울하지만 법적 책임 위험도 있다. 그런데 매뉴얼이 분명하면 일하기 편하고 최대한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나중에 책임을 면하기도 수월하다.
삼성증권
삼성증권은 왜 단기간다수계좌 규정이 없는지 물었다. 삼성증권의 정책이라는 답변이다. 20 영업일 제한 없이 증권계좌를 만들 수는 있지만 이체한도나 이체 은행 변경 등은 계좌 개설하고 20일이 지나야 할수있다고 알려주었다. 삼성 나름의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계좌개설 제한을 하지 않는 증권회사가 여럿있다. 단기간다수계좌 제한이 정책적으로 선택 가능한 규정이라는 뜻이다.
특정금융정보법
근거법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었다. 약칭으로 특정금융정보법이라고 부른다.
특정금융정보법
목적
제1조(목적) 이 법은 금융거래 등을 이용한 자금세탁행위와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를 규제하는 데 필요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범죄행위를 예방하고 나아가 건전하고 투명한 금융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특금법은 범죄를 예방하는 목적의 법이다. 계좌 개설 제한은 자금세탁행위와 관련 있겠다.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에 이용되어 자금이 흘러가는 걸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니까 말이다.
고객 확인의무
제5조의2(금융회사등의 고객 확인의무) ① 금융회사등은 금융거래등을 이용한 자금세탁행위 및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합당한 주의(注意)로서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금융회사등은 이를 위한 업무 지침을 작성하고 운용하여야 한다. <개정 2014. 5. 28., 2020. 3. 24.>
1. 고객이 계좌를 신규로 개설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으로 일회성 금융거래등을 하는 경우: 다음 각 목의 사항을 확인
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고객의 신원에 관한 사항
나. 고객을 최종적으로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자연인(이하 이 조에서 실제 소유자라 한다)에 관한 사항. 다만, 고객이 법인 또는 단체인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2. 고객이 실제 소유자인지 여부가 의심되는 등 고객이 자금세탁행위나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경우: 다음 각 목의 사항을 확인
가. 제1호 각 목의 사항
나.금융거래등의 목적과 거래자금의 원천등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정하여 고시하는 사항(금융회사등이 자금세탁행위나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의 위험성에 비례하여 합리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범위에 한정한다)
1. 신원확인
고객이 계좌를 신규로 개설할 때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고객이 대리인일 때 실제 소유자 신원확인)
- 실지명의
- 주소
- 연락처(전화번호 및 전자우편주소)
2. 의심되는 고객
고객이 실제 소유자인지 의심되고 범죄에 연루될 것 같을 때, 고객의 신원을 확인하고 금융거래 등의 목적과 거래자금의 원천을 확인해야 한다.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와 증빙자료들을 요구한다.
법이 묘하다
지금 통장을 만들러 온 사람이 통장을 대여할 목적으로 만들려는지, 범죄에 연루될 소지가 있는 사람인지 (대놓고 이상한게 아니면) 애초에 금융회사가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 특정금융정보법에 의하면 의심스러운 경우에 금융거래목적과 자금 원천을 확인해야한다. 의심스러운 경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0 영업일
그래서 한 달에 통장을 하나 이상 만드는 건 의심스러운 경우라는 조건을 만들었나 보다. 의심스러운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통장 만들 때, 금융거래목적확인서와 증빙자료들을 제출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조건을 만족시키는 고객이면 의심을 거두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 의심 상태인 거다.
"금융회사등은 이를 위한 업무 지침을 작성하고 운용하여야 한다." 고 했으니 법대로다.
영화 속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일어날 범죄를 미리 볼 수 있는 예지력에 기대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범죄를 예방하는 치안 시스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한 달에 통장을 두 개 만들려는 시도가 장차 일어날 범죄의 전조로 추정된다. 범죄와 관련될지도 모르는 의심스러운 경우로 통장 만들려는 목적을 증빙해서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마침
범죄를 예방하자는데 반대만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거나 내가 불편하듯이 실제 계좌 이용 범죄자들도 불편할 테니까. 물론 방법을 찾겠지만 말이다.
그보단 특정자료가 아니면 증빙자료로 인정을 안하려고하는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증빙자료 만들기가 애매해서 도무지 불편해진 사람들을 위한 대안을 찾아주길 바란다.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제한하다니.... 좀 더 세련된 방법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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